철학이 있는 삶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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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의 계급 투쟁’ 

(Gisaengchung (Parasite), class struggle by Bong Joon-Ho).















2019년에 칸 영화제가 봉준호 감독의 작품 <기생충>을 소개한 글의 제목입니다. 영화에는 세 가족이 등장합니다. 부자 가족, 이 집 가정부와 지하에 숨어 사는 그녀 남편, 모략으로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쫓아낸 후 신분과 이력을 속여 취업한 일가족입니다. 부자를 제외한 두 가족은 이 집에 붙어 살기 위한 다툼을 벌입니다. 그런 상황을 부자 가족은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순수하고 구김 없는 부자와 거짓과 모략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비는 극명합니다. 그러니 누가 봐도 기생충은 가난한 두 가족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기생충」은 누구일까


부잣집 가장은 잘나가는 IT 기업의 대표입니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부부는 보통 사람이 평생 노력해도 살 수 없을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안 살림과 자녀를 돌봐주는 사람을 고용하고 운전기사도 두고 있습니다. 가난한 두 가족은 부자를 존경합니다. 이들의 대화 중 ‘부자는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구김이 없다’는 대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누가 봐도 가난한 두 가족이 부잣집에 기생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해결되지 않는 궁금한 점이 남았습니다.


첫째, 부자인 젊은 부부는 어떻게 그 정도의 큰 부를 쌓았을까. 둘째, 숨어 사는 남편은 누구로부터 어떤 사기를 당해 인생이 망가졌을까. 셋째, 여러 사업을 했다는 사기꾼 가족의 가장도 노력과 자금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네 명의 가족이 반지하 집에 살게 되었을까 하는 것들입니다.


어쨌든 황금종려상을 준 칸 영화제가 이 영화 줄거리를 계급투쟁으로 보고, 세계 각지의 언론들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안에서는 비슷한 관점이 잘 보이지 않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한 가지 더, 영화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 기생충은 누구일까 하는 점입니다. 멀쩡히 일하던 사람들이 쫓겨나도록 계략을 꾸미고 대신 자신들이 신분을 속여 취업한 가족이야말로 가장 많은 혐오감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영화 제목의 당사자들일 거라 짐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론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영화가, 빚쟁이들에 쫓기는 숨어 사는 남편의 시각으로 전개된다면, 사기꾼 가장과 그 가족의 과거 시점에서 펼쳐진다면 과연 기생충은 누구일까. 혹시 현재 부자인 사업가가 누군가에겐 기생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물고 물리며 남에게 기생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에 피 냄새를 맡은 파리 한 마리가 주변을 돕니다. 파리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죽음보다는 그에게서 나오는 피를 빨며 기생하는 일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계급 투쟁이라고 하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다툼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 투쟁은 가난한 두 가족 간에 벌어집니다. 그러니 이들의 싸움은 ‘계급’ 투쟁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들 모두 부자를 존경하고 있으므로 집주인도 투쟁 대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칸 영화제는 이 영화를 계급 투쟁이라고 소개했을까요. 어떤 눈으로 본 것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자란 온갖 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돈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어떻게 해서든 부를 거머쥐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부를 얻으려면 권력이 있어야 하고 권력은 부가 뒷받침되어야 하니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정경유착은 필연입니다. 둘 모두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신분제 사회의 노예보다 못 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노예라는 인식은 하지 못하게 끊임없는 세뇌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인간성은 사라지고 약자들은 정치적 차별과 경제적 곤궁에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삽니다.


많은 전문가가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만, 대부분 결과만 뒤쫓을 뿐 본질을 들여다보는 처방은 나오지 않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세상을 보는 잣대로는 본질에 다가설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에 따라 원인 분석과 해결 방안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이 되는 관점이 곧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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