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은 전태일 열사가 노동현실의 아픔과 슬픔을 홀로 안은 채 세상에 경종을 울리며 떠난 날이다. 당시 스물 둘이었던 그가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해마다 11월이면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 전태일 열사를 기리고 노동의 의미와 사람다운 삶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노동조합은 헌법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등 법률에 의해 누구나 자유로이 설립할 수 있고 법률의 보호를 받으며 활동을 할 수 있다. 설립신고서에 양식만 갖추어 제출을 하면 해당 관서에서는 3일 이내에 설립필증을 내어줘야 한다.
하지만 법률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것이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거의 비슷할 것이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소모품쯤으로 여기는 사측의 태도가 그럴 것이고,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하고 있는 기본적 권리조차도 행사할 수 없는 환경이 그렇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연차휴가 사용 조차도 눈치봐야 하거나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 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노동조합 설립을 생각하는 것이다. 혼자서도 권리를 찾기위해 싸울수야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장치가 근로기준법이긴 하지만 허울 뿐인 법이이기에 논리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며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러니 사측은 콧방귀만 뀔 뿐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러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그나마 대화가 가능하게 된다.
노동조합이 부딪히는 현실적 어려움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도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불순한 조직으로 본다는 것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세뇌교육 덕택인지, 일단 '노조'라는 단어가 사람들을 위축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불순한 조직이라면 어찌하여 헌법에서 그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것인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에 이른다.
둘째, 같은 노동조합이라 해도 공기업,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비정규직' 등 몸담고 있는 직장에 따라 그 노조의 싸움의 모습은 천양지차가 난다. 민주노총 같은 연합노조는 언제나 '연대' 라는 단어를 외치지만 비슷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자들끼리의 '그들만의 리그'인 연대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조합들은 약자인 조합들에게 연대라는것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은 '투쟁'과 '단결'을 외치도록 가르치지만 정작 그들의 행동은 거리가 멀다.
셋째, 법은 법일뿐 현실과는 너무나도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측에서 임금을 주지않아 체불이 되면 노동부에서는 조사를 한 후 체불임금을 확인해준다. 논리적으로는 법적 절차를 거치면 받을 수 있지만 사측이 내놓지 않고 버티면 결국 민사소송을 해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 중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싸움을 해 나갈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한, 사측에서 이런 저런 핑계로 소송을 걸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막가파식 행태를 보일 경우 맞서 싸우는것은 너무나 어렵다. 거기에 더해, 짧은 계약기간 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약기간 만료 후 사측의 계약해지라는 칼날에 버티기 어렵다. 그러므로 밉게 보이지 않기위해 싸움을 할 수도 없는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은,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기위한 몸부림은 당연히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러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깊은 고찰과 준비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동료들을 어떻게 아우르고 조직을 이끌어 나갈것인지. 현재 내 동료들은 그럴수 있는 사람들인지, 일단 조직이 되고나서 우리의 회사와는 어떻게 대화와 싸움을 전개해 나갈것인지, 우리 현실에서 어떤 방향과 방법으로 나아가야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수 있을것인지, 회사가 막가파식으로 나올때 과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현명한 것인지, 노조의 동지들이 내놓는 다른 의견들 수렴하고 결정할 때 무조건 민주적 절차에 의할것인지, 법적으로 부딪혔을때 승산이 있는지 등등 당위로서의 결과가 아닌 현실적 장애물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논의와 심사숙고가 있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들고 먼 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 전술적으로 허용해주는 소수의 노동조합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러한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물론 싸움이라는것이 완벽하게 이길 준비를 마친다음에 시작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고, 주변의 조언을 듣고, 나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시작해야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전태일 열사가 목숨을 바치며 스러져간 시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아니 더 심각한 고강도 노동과 실질적 빈곤이 깊어가는 오늘날 노동조합의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직업의 비정규직화,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을 바꿀 수 없는 임금 수준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의식과 의지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