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우리의 '노동'과 '근로' 처럼 labor와 work를 동의어로 사용해 왔다. 그렇지만 고대와 근대의 유럽에서는 어원적으로 무관한 두 단어를 각기 보존했다. 또한 영어는 노동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각기 다른 뜻을 갖는 장점이 있다. 사용 가치를 만들어내고 질적으로 규정되는 노동은 work, 가치를 만들어내고 양적으로 측정되는 노동은 labour로 다시 구별된다는 것이다.
우리 법은 ‘근로’, 정부 부처의 이름엔 ’노동’을 쓴다. 왜 이러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곳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심지어 궁금해하는 사람조차 없는 듯하다. 어차피 그게 그거 같은데 뭘 피곤하게 따지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렴 법이나 정부 부처의 이름을 지으면서 대충 결정했을 리는 없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우리 사회는 노동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크다. 대신 근로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장래에 노동자보다는 근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노동자는 낮은 일당을 받으며 공사 현장에서 고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소위 ‘노가다’인데 반해 근로자는 사무직이라는 것이다.
✻ 흔히 사용하는 '노가다'는 토목공사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가리키는 일본어 '도가타'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와 근로자의 차이는 단순한 표현의 다름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인다.
일제는 이 땅의 학생들을 잡아가 ‘학도 근로 보국대'라는 명칭을 붙여 강제 노역을 시켰다. 근로란 부지런하게 일한다는 뜻인데, 여기서 부지런한 정도는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었다. 보국은 나라에 보답한다는 뜻이며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당연히 일본을 뜻한다.
오늘의 대한민국 근로자는 누구를 위해 어느 정도로 일하는가.
한자 ‘勞動’ : 고달프고 고단한 운동
라틴어 ‘labor’ : 고생, 간난신고, 재난이나 환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