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9일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서울 한복판을 가득 메운 가운데 국민들의 하염없는 눈물은 뜨거운 날씨를 적시고도 남음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겠다고 했다. 그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슴속에 그분이 부르짖었던 '정의' '민주' 등의 구호를 새기고 살아야겠다. 하지만, 이 나라는 OECD 국가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수십 년간 그 본질을 바뀌지 않았다. 가신 분의 뜻을 기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작지 않은 용기가 필수적인 것이 현실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눈앞의 이익과 손실을 저울질하지 않을 용기. 말을 해야 할 때 거침없이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용기. 말로서도 통하지 않을 때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만이 바보 노무현의 뜻을 그나마 진정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번 사태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땅의 민주주의에 회의적이다. 독재정권은 독재를 휘두르는 것이 속성이다. 문제는 그 독재의 칼날에 맞서 어떻게 대응하고,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얼마나 그들을 꾸짖을 수 있느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있었고 5월 23일 당일부터 국민들은 추모를 시작했다. 그 추모를 독재 권력의 하수인들은 막아서고 짓밟았다. 그럼에도 별다른 항의의 몸짓과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유족의 뜻에 따라 추도사를 하기로 되어 있던 분도 결국 독재정권에 막혔다. 여기서도 우리는 무기력했다. 심지어 만장에 사용되는 대나무를 불법시위의 위협이 있다며 독재는 또 막았다. 그러자 우리는 그들의 뜻에 따라 플라스틱으로 바꾸었다. 장례(葬禮)는 글자 그대로 예절이다. 절차와 절도가 지켜져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지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장례 행렬이 지나가기 무섭게 독재 경찰은 군중들을 해산시켰다. 모여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추모객이 아니라 예비 불법시위자 들이었다. 독재 권력이야 원래 그런 속성이 있는 속물들이라 치더라도 주권자인 우리들은 순한 양처럼 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노무현은 대통령이었지만 권력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이 나라의 권력은 청와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간파한 노무현은 오히려 약자였고 오히려 투사였다. 그런 그가 갔다. 모두 한마디씩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버릴 수 있는 나 자신과의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결단코 노무현의 뜻은 살아 숨 쉴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자가 주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그 주권은 사이비들의 들러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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